숭실사이버대학교 이호선 교수는 오랫동안 상담실에서 사람들의 가장 어두운 순간을 마주해 온 상담가다. 그는 상담 현장을 절망의 봉우리를 향해 눈물의 저수지로 뛰어드는 순간이라 부른다. 굉장히 무겁고 아프지만, 때로는 희망에 설레기도 하고 다시 좌절에 빠지기도 하는 자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어둡고 무거운 자리에서도 그는 사람들이 잊고 있던 뜻밖의 다행한 순간들을 늘 발견해 왔다고 말한다.
핵심 메시지
이호선 교수가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인생도, 기억도 다시 편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지나온 삶을 하나의 불행한 이야기로 뭉뚱그려 기억하지만, 실제로는 그 불행의 봉우리들 사이사이에 우리를 지탱해 준 작은 다행의 순간들이 늘 숨어 있었다. 문제는 인간이 부정성 편향이라는 본능 때문에 그 다행의 순간들을 쉽게 잊어버린다는 데 있다.
상담이란 그렇게 잊힌 다행의 순간을 다시 발굴해 내는 과정이라고 그는 말한다. 불행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하나의 불행에서 곧바로 다음 불행으로 건너뛰는 대신, 그 사이에 있었던 꽃밭과 시원한 물, 봄바람 같은 순간들을 되찾을 때 우리의 인생 서사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시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
주요 내용
부정성 편향, 우리는 왜 불행만 기억하는가

이호선 교수는 인간이 본래 긍정적으로 태어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힘들고 서럽고 아팠던 기억을 가장 먼저, 그리고 반복적으로 떠올리도록 설계된 존재라는 것이다. 이런 성향을 부정성 편향이라 부르는데,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힘들었던 경험을 오래 기억해야 비슷한 상황이 다시 왔을 때 덜 넘어지고 덜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를 보존하려는 본능적인 사고방식인 셈이다.
그는 최근 상담했던 한 신혼부부의 사례를 들었다. 7박 8일의 신혼여행 중 나흘은 더없이 행복했지만, 닷새째 되던 날 다툼이 시작되어 마지막 날까지 눈물로 마무리됐다. 돌아온 신부는 결혼 자체를 후회한다고 말했다. 나흘의 행복한 시간보다 마지막의 다툼과 눈물이 훨씬 크게 남아 신혼여행 전체를 실패로 규정해 버린 것이다.
피크 앤드 룰, 인생을 결정짓는 두 개의 기억

이 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이 피크 앤드 룰이다. 피크는 인생에서 가장 강렬하게 남은 정점의 기억이고, 엔드는 지금 이 순간에서 가장 가까운 기억이다. 이 두 지점이 행복했다고 느끼는 사람은 평생을 행복했다고 말하고, 두 지점이 힘들었다고 느끼는 사람은 평생을 불행했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부정성 편향 때문에 우리가 떠올리는 하이라이트의 상당 부분이 실은 불행의 순간이라는 데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자신의 삶 전체를 불행이라 결론짓게 된다. 그는 이런 서사를 다른 방향으로 옮겨가도록 돕는 과정이 바로 상담이라고 설명한다.
가족을 모두 잃은 이의 상담, 봉우리 속에서 찾은 다행

그는 8년 전 상담했던 한 여성이 다시 자신을 찾아온 이야기를 전했다. 그 사이 남편은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두 아들은 함께 여행을 갔다가 교통사고로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다. 2년 반 사이에 가족 셋을 잃은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인생이 저주받았다고,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편이 나았을 거라고 말했다. 어떻게 하고 싶으냐는 물음에 그는 죽고 싶다고 답했다.
이호선 교수는 그에게 신에게 소리 지를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약 1년 반에 걸친 상담 동안, 그의 인생에서 불행의 봉우리마다 곁에 있었던 존재들을 함께 찾아갔다. 매를 대신 맞아준 언니, 가까이 있던 스님, 큰아이의 존재, 그리고 마지막에는 기억조차 못하고 있던 남은 딸까지. 그때마다 그는 다행이다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두 아들을 잃은 슬픔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 사이에 있었던 다행의 순간들을 하나씩 되찾으면서 그는 더 이상 죽고 싶지 않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몸으로 겪는 불행, 건강일기라는 처방

이호선 교수는 불행은 늘 몸으로 겪는다고 말한다. 오래 아팠던 사람일수록 병원 검사에서는 별다른 문제가 나오지 않아도 온몸으로 통증을 안고 상담실을 찾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안색이 창백하거나 누렇고, 걸음이 느리고 발이 끌리고, 눈꺼풀의 움직임마저 둔해지는 모습에서 그는 삶의 고통이 얼마나 오래 쌓여왔는지를 짐작한다고 했다. 큰 충격이나 상처를 겪은 뒤 심장마비와 흡사한 통증을 느끼는 상한 심장 증후군, 감정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알렉시티미아도 같은 맥락에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그는 내담자에게 건강일기를 권한다. 오늘의 기분, 통증, 식사의 질을 각각 1점에서 10점으로 매기는 것뿐인 간단한 기록이다. 서너 주만 쌓아도 자신의 상태가 좋아지고 있는지 나빠지고 있는지가 뚜렷이 드러난다. 몸의 변화를 기록하는 것이 결국 일상의 변화, 나아가 인생 서사의 변화로 이어진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매일 죽고 싶던 배우, 감정일기가 바꾼 1.8점
이어 그는 한 유명 배우의 이야기를 전했다. 어린 시절 따돌림과 폭력, 가난 속에서 자랐고, 우연히 맡은 작품 하나로 유명해진 뒤에도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죽고 싶다는 생각에 시달렸다. 행복을 누릴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 여겨 웃는 것조차 편치 않았다고 한다. 그는 건강일기와 함께 감정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날 있었던 행복한 감정 세 가지를 적고, 그 감정을 1점에서 10점 사이로 점수 매기는 방식이었다.
매주 한 번씩 만나며 한 달 반이 지났을 때, 평균 점수는 1.8점이나 올라 있었다. 그 변화를 이끈 핵심은 어려운 이야기 끝에 늘 덧붙였던 한마디, 그래서 다행이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한다. 불행과 불행의 봉우리 사이에는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희망의 서사가 이미 있었고, 그것을 발굴해 낼 때 우리의 역사는 다른 방식으로 편집될 수 있다고. 스스로가 자기 역사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오늘부터도 새로운 희망의 서사를 써 내려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원문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