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를 좋아했지만 시험지는 늘 풀리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 물리 시험을 거의 백지로 제출한 적도 있다. 연구실 인턴 두 달 동안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고, 대학원에서는 박사 자격시험에도 떨어졌다. 지금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양자 기술을 연구하는 이정현 연구원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는 스스로를 '결함이 많은 연구자'였다고 말한다. 그리고 지금 그가 연구하는 대상도 다름 아닌 '결함'이다.
반도체 안의 아주 작은 흠, 점결함
반도체 물질은 같은 종류의 원자들이 아주 규칙적인 격자 형태로 배열된 고체다. 그런데 이 규칙적인 배열 안에 작은 이상이 생길 때가 있다. 있어야 할 원자 하나가 빠져 있거나, 원래 없어야 할 다른 종류의 원자가 끼어드는 경우다. 파란 도화지에 빨간 점 하나가 찍힌 것처럼, 고체 격자 안 한 지점에 생긴 이런 작은 결함을 '점결함'이라 부른다.
일반적인 반도체 기술에서 점결함은 제거 대상이다. 반도체는 전자의 흐름으로 정보를 표현하는데(전자가 흐르면 1, 흐르지 않으면 0), 원치 않는 점결함은 전자의 이동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되어 오류를 만들고 성능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없애려던 흠이 정보를 담는 방이 되다
그런데 양자 기술에서는 흥미로운 반전이 일어난다. 제거하려던 그 결함이 오히려 가장 중요한 자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점결함은 전자 하나를 붙잡아 두는 작은 방처럼 작동한다. 그리고 그 전자는 위를 향한 상태, 아래를 향한 상태, 또는 두 상태가 겹쳐 있는 상태 같은 고유한 양자 상태를 가질 수 있다. 이 양자 상태를 이용해 정보를 저장하는 기본 단위가 바로 '큐비트'다. 한때 없애야 할 흠이었던 점결함이, 관점을 바꾸면 전자를 붙잡아 두고 양자 정보를 저장하는 작은 방이 되는 셈이다.
다이아몬드 속 질소-공극 색중심
점결함의 대표적인 예로는 실리콘 속 인 도너, 그리고 다이아몬드 속 '질소-공극 색중심'이 있다. 이정현 연구원이 연구하는 대상이 바로 후자다. 다이아몬드는 보석이기 이전에 매우 단단하고 화학적으로 안정적이며 열전도율이 뛰어난 반도체 물질이다. 탄소 원자들이 규칙적으로 배열된 다이아몬드 안에서 탄소 원자 하나가 빠지고 그 옆에 질소 원자가 들어가면, 특별한 점결함인 질소-공극 색중심이 만들어진다. 보통이라면 흠이라 여길 이 작은 빈자리와 낯선 원자가, 빛이나 전기 신호로 상태를 읽고 바꾸고 저장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양자 정보 저장소가 된다.
연구 속에서 발견한 나 자신
이 연구원은 이 지점에서 자신의 삶을 다시 보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가 스스로 결함이라 여겼던 건 '배움이 느리다'는 것이었다. 남들보다 늦게 이해하고, 늦게 성과를 냈고, 실수도 잦았다. 대학원 진학 후에도 오랫동안 지도 교수를 정하지 못해 방황했다. 그러던 중 만난 지도 교수와의 첫 면담에서, 그는 대단한 연구 계획 대신 이렇게 답했다. "어떤 연구라도 맡겨주시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보겠습니다." 이후 몇 달간 인턴을 했지만 여전히 특별한 성과는 없었다. 그럼에도 지도 교수는 결과보다 가능성을 먼저 봐주었고, 대학원 선배들은 실험 장비 사용법부터 논문 쓰는 법까지 하나하나 가르쳐주었다.
그의 느림은 혼자 있을 때는 결함이었지만, 그를 믿어준 교수와 기다려준 선배들, 함께 실험한 동료들을 만나며 조금씩 다른 것이 되었다. 오래 붙잡고 고민하는 힘, 쉽게 포기하지 않는 끈기로 바뀐 것이다. 결함이 사라진 게 아니라, 그 결함이 놓인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사람들이 달라졌을 뿐이었다.
독주가 아닌 합주, 개인이 아닌 관계
양자 기술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의 입자가 얼마나 완벽하냐가 아니라, 서로 어떻게 연결되고 영향을 주고받느냐다. MIT의 세스 로이드 교수는 고전적 계산과 양자 계산의 차이를 "고전이 독주라면 양자는 오케스트라의 합주와 같다"고 표현했다. 양자 컴퓨터의 핵심 자원인 양자 얽힘과 간섭 현상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때 만들어진다. 마찬가지로 한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도 뛰어난 개인의 역량이 아니라 가족, 친구, 동료, 공동 연구자들 사이의 관계와 상호작용이라고 그는 말한다.
AI 과학자라는 개념이 등장하며 많은 연구자들이 긴장하는 시대이지만, 그는 여전히 인간 연구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연구는 정답을 찾는 일이 아니라 의미를 찾는 일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위해 연구할 것인가, 어떤 가치를 추구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결국 사람이,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할 때 더 깊어진다.
결함은 결함으로 끝나지 않는다
반도체 안의 점결함은 그냥 두면 전자의 흐름을 방해하는 오류일 뿐이다. 하지만 좋은 환경을 만나고, 좋은 사람들과 상호작용하고, 새로운 관점으로 다루어질 때 그것은 가능성이 된다. 한때 제거해야 할 대상이었던 반도체 결함이 지금은 미래 양자 기술의 핵심 자원이 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 결함이라고, 실패라고, 부족함이라고 여기는 경험이 있다면, 너무 빨리 결론 내리지 않아도 괜찮다.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는지, 어떤 사람들과 만나는지, 어떤 방향으로 연결되는지에 따라 그것은 전혀 다른 가능성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