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8. 04.

김기환 단장, 회의론자에서 양자컴퓨터 연구자가 되기까지

세바시 강연|2026. 08. 04.

양자 컴퓨터를 믿지 않았던 물리학자

기초과학연구원(IBS) 트랩이온양자과학연구단을 이끄는 김기환 단장은 스스로를 양자 컴퓨터가 안 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지금은 이온을 이용한 양자 컴퓨터 연구의 최전선에 서 있지만, 대학원 시절 처음 접한 양자 컴퓨터라는 개념은 그에게 회의적인 인상만 남겼다. 친구들과 모여 토론을 해봐도 결론은 명확하지 않았고, 무엇을 구현하려는 것인지조차 뚜렷하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박사 논문 주제조차 양자 컴퓨터와는 다른 방향으로 잡았고, 한동안 그 세계는 꿈같은 이야기로 마음 한구석에 남겨두었다. 하지만 몇 년 뒤, 그가 회의적으로 눈을 돌린 사이 누군가는 그 길을 계속 파고들어 중요한 진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핵심 메시지

김기환 단장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정답을 미리 알고 시작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으라는 것이다. 그는 원했던 곳에 가지 못했고, 한국에 돌아오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으며, 설명하고 싶은 것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순간도 많았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돌아가는 길들이 그를 다음 단계로 데려갔다는 것이다.

그는 많이 아는 것보다 어디에 관심을 두고 싶은가가 훨씬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계산과 요약을 AI가 대신해주는 시대일수록, 어떤 문제가 중요한지 판단하고 그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는 감각은 여전히 사람의 몫으로 남는다는 것이다. 몰랐고 틀렸고 돌아갔고 혼나면서도 그 감각만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고백은, 확신 없이도 계속 걸어간 사람만이 결국 길을 만들어낸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주요 내용

회의적이었던 대학원 시절, 뒤늦게 찾아온 충격

박사 과정을 밟던 2000년대 초, 고등과학원에서 해외 저명 학자를 초청한 강연을 들으며 그는 처음 양자 컴퓨터라는 개념을 접했다. 흥미롭긴 했지만 확신은 서지 않았고, 결국 관심을 접은 채 박사 논문도 다른 방향으로 마무리했다.

포닥 자리를 알아보던 무렵, 그가 회의적으로 등 돌렸던 바로 그 분야에서 다른 연구자들이 중요한 성과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논문을 통해 알게 됐다. 충격과 부끄러움, 그리고 묘한 설렘이 동시에 찾아왔고 그 감정이 이온 트랩 연구로 발을 들이는 계기가 됐다.

이온 하나를 공중에 붙잡아 계산하다

그가 택한 이온 트랩 방식은 전기를 띤 이온을 진공 속 빈 공간에 전기장으로 붙잡아 두고, 레이저로 그 상태를 정밀하게 조종해 계산을 수행하는 기술이다. 하나하나 붙잡힌 이온은 양자 컴퓨터의 가장 작은 정보 단위인 큐비트가 된다.

말로는 간단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온 하나를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가두는 것도, 레이저를 정밀하게 다루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에서 원자물리 훈련을 받은 그의 경험이 이 분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는 점도 그는 함께 짚는다.

"그 손으로 계산할 수 있는데 왜 만듭니까"

해외에서 성과를 쌓은 뒤 한국으로 돌아가 기여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여러 대학과 기관의 문을 두드렸지만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당시 한국에는 그가 연구하던 방식을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한 면접 자리에서 들은 질문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큐비트 몇 개로 이룬 성과를 손으로도 계산할 수 있는데 왜 굳이 복잡한 장치를 만드느냐는 물음이었다. 타당한 지적이었기에 오히려 그는 당황했고, 작은 실험이 앞으로 어떤 길을 열 수 있는지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채 한국에서 일할 기회를 끝내 찾지 못했다.

"바보 같은 짓"이라던 팩폭이 낳은 1시간의 기적

2014년 캐나다에서 열린 한 학교에서 양자 정보 분야의 개척자 중 한 명인 찰스 베넷 박사를 만난 자리에서, 그는 원자로 양자 정보를 저장하고 전송하는 아이디어를 설명했다. 돌아온 답은 단호했다. 원자를 쓴다는 건 바보 같은 생각이며, 가능하다고 믿는다면 한 시간 이상 중첩 상태를 유지하는 원자를 가져와 보라는 것이었다.

찾아보니 실제로 단일 원자로 1분 이상 중첩을 유지한 결과조차 없었다. 문제는 원자 자체가 아니라 오랫동안 가두는 과정에서 생기는 잡음에 있다는 것을 확인한 연구진은, 잡음을 없애는 대신 흔들리는 이온을 다른 이온으로 함께 냉각시키는 방법을 시도했다. 그 결과 중첩 상태는 처음 10분에서 이후 한 시간 이상으로 늘어났고, 이는 학계에서 큰 반향을 얻었다.

AI 시대, 지식보다 중요해지는 것

AI가 요약과 계산, 코드 작성까지 빠르게 해내는 시대에 그는 연구 현장에서 한 가지를 점점 더 확신하게 됐다고 말한다. 많이 아는 것보다 어디에 관심을 두고 싶은지가 훨씬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문제가 중요한지 판단하고 방향을 정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으로 남는다.

그는 처음부터 이 길을 잘 알고 선택한 것이 아니라 몰랐고 틀렸고 돌아갔고 혼나면서 배웠다고 돌아본다. 그럼에도 문제가 재미있고 더 풀어보고 싶다는 감각만은 사라지지 않았고, 그 감각이 지금의 자리까지 그를 데려왔다고 말한다.

확신 없이도 계속 걷는다는 것

그는 지금 함께할 연구자를 찾고 있다고 밝히며, 박사 과정이든 학부생이든 이제 막 관심을 갖기 시작한 사람이든 연락해달라고 청했다. 중국에서 지내며 느낀 것은 한국이 전 세계를 무대로 삼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태생적으로 쉽지 않은 구조를 가진 나라라는 점이었다. 그럼에도 맨땅에서 헤딩하며 세계로 나간 선배들의 경험이 다음 세대에게 든든한 자산이 되고 있다고 그는 덧붙인다.

20년의 외국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자신의 길이 맞는지 확신했던 순간이 많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확신 없는 순간들이 오히려 그를 계속 움직이게 했다. 정답을 몰랐기에 질문을 이어갔고, 틀렸기에 다시 생각했고, 혼났기에 더 깊이 파고들었다는 그의 말은 모든 정답을 알고 시작할 필요는 없으며, 계속 가는 사람이 결국 길을 만든다는 문장으로 요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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