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7. 16.

김경일 교수의 나쁜 습관 탈출법: 기질보다 상황이다

세바시 강연|2026. 07. 16.

핵심 메시지

한국은 고각성 스트레스 사회다. 일본이 '외로운 사회'라면 한국은 '괴로운 사회'에 가깝다. 만나기 싫은 사람을 계속 만나야 하는 고통이 크다는 뜻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스트레스가 쌓일 때마다 저마다의 나쁜 습관이 문을 열고 튀어나온다. 다리를 꼬거나 턱을 괴거나, 심지어 자기도 모르게 불을 끄고 나가버리는 식이다.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가 강조하는 것은 기질보다 상황이 훨씬 힘이 세다는 사실이다. 타고난 성격을 바꾸기는 어렵지만, 그 사람을 둘러싼 상황은 얼마든지 설계할 수 있다. 그래서 스트레스가 심한 날에는 새로운 좋은 습관을 억지로 만들려 애쓰기보다, 이미 가지고 있던 좋은 습관을 다시 꺼내 쓰는 편이 훨씬 현실적이라고 말한다.

실패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무작정 자신을 탓하는 대신, 한 걸음 물러서 관찰자의 시선으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 지혜로운 자책법이라는 것이 이 강연의 결론이다.

주요 내용

스트레스가 불러내는 나쁜 습관

김경일 교수는 오랫동안 기업 면접 현장을 관찰하며 흥미로운 규칙을 발견했다. 긴장한 지원자 열 명 중 세 명은 자리에 앉자마자 다리를 꼬았고, 정작 본인은 그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두 명은 턱을 괴고 면접을 진행했고, 한 명은 면접이 끝난 뒤 불을 끄고 나가버려 면접위원들을 어둠 속에 남겨두기도 했다.

이런 행동은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에서 스트레스가 더해질 때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반응이다. 우리는 흔히 나쁜 습관을 의지로 제어할 수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스트레스가 심해지는 순간 그 습관이 즉시 문을 열고 나온다.

기질보다 상황이 더 강력하다

남가주 대학의 웬디우드 교수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4주간 실험을 진행했다. 앞선 2주는 스트레스가 큰 중간고사 기간, 뒤 2주는 성적 발표 전이라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기간이었다. 스트레스가 큰 시기에는 다리를 꼬고 말을 끊고 아무 데나 물건을 버리는 등 부정적인 습관이 쏟아져 나왔고, 흥미롭게도 긍정적인 습관 역시 함께 드러났다. 스트레스가 사람의 습관을 표면으로 밀어 올리는 계기가 된다는 뜻이다. 이 결과를 더 확실히 하기 위해 오른손잡이 참가자들에게 4주 동안 왼손만 쓰게 하는 실험까지 진행했는데, 결과는 동일했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진행된 또 다른 연구는 수학 시험을 앞두고 인종에 대한 고정관념을 상기시키는 것만으로도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점수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인지심리학자들은 '창의적인 인재'라는 표현 대신, '자신을 창의적으로 만드는 상황을 아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결국 사람을 바꾸는 것은 타고난 기질이 아니라 그 사람이 놓인 상황이라는 것이다.

if-then-when, 의지력 없이 습관을 만드는 공식

새로운 습관을 만들 때 가장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순전히 의지력에 기대는 것이다. 김경일 교수는 영양제를 챙겨 먹고 탈모제를 바르는 습관을 만들려다 번번이 실패한 경험을 예로 든다. 해법은 '언제, 무엇을 하고 난 다음에, 무엇을 한다'는 육하원칙 형태의 규칙을 만드는 것이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을 다녀오고 8시 알람이 울리면 영양제를 먹고 탈모제를 바른다'처럼 조건을 구체적으로 정해두었다.

이렇게 if-then-when 형식을 갖추면 뇌는 이를 중요한 정보로 인식하고 행동을 더 쉽게 이어간다. 의지력을 쥐어짜는 대신, 의지력이 필요 없을 만큼 자연스럽게 실행되는 상황 자체를 만들어두는 방식이다.

완벽한 날보다 애매한 날에 시작하라

새로운 습관을 시작하기 가장 좋은 날은 언제일까. 김경일 교수는 아주 기분 좋은 날도, 너무 힘든 날도 아닌 '살짝 애매한 날'이라고 답한다. 기분이 좋은 날은 변화 자체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시작하기 어렵다. 그는 딸이 원하던 대학에 합격해 온 가족이 기뻐하던 2주 동안, 미리 사둔 영양제를 한 번도 먹지 않았다고 털어놓는다. 반면 큰딸이 아르바이트 중 사소하게 속상한 일을 겪고 카톡을 보내온 그 애매한 기분의 날, 비로소 영양제를 다시 꺼내 먹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무명이었던 소설가 조정래는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던 어느 날 아침, 문득 원고지 30매를 써보자고 결심했고 그 습관이 쌓여 대작을 완성했다. 김경일 교수는 이를 따라 하려 했지만 실패했고, 대신 자신의 그릇에 맞는 원고지 세 매를 매일 쓰는 방식으로 2013년부터 습관을 이어오고 있다. 자신에게 맞는 크기로, 애매한 감정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이 오히려 오래가는 습관을 만든다는 이야기다.

지혜롭게 자책하는 법

노력해도 결과가 신통치 않을 때가 있다. 이럴 때 '나는 왜 이런 것도 못 할까'라는 식의 막연한 자책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김경일 교수가 제안하는 방법은 자기 이름을 부르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경일아, 너는 왜 너에게 맞는 상황적 단서를 아직 기록해두지 않은 거야?'처럼 한 걸음 떨어진 관찰자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화법이다.

그는 스스로도 집에서는 논문을 쓰지 못하고 연구실 오전 시간에만 논문이 잘 써지는 사람이며, 반대로 일요일 저녁 아내와 대화를 나눈 뒤에는 신문 칼럼이 잘 써진다고 말한다. 이렇게 자신에게 맞는 상황적 단서를 하나씩 기록해두면, 실패조차 자책의 대상이 아니라 나를 이해하는 좋은 기록으로 남는다.

결국 좋은 습관을 만드는 힘은 거창한 의지나 결심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상황을 알아채고 그 상황 속으로 스스로를 데려다 놓는 데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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