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의학과 의사로 일하며 24년째 달리기를 이어온 정세희 교수는 진료실에서 수많은 뇌 MRI 사진을 마주해왔다. 그는 뇌 MRI만 보아도 그 사람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어느 정도 짐작된다고 말한다. 운동 부족, 비만, 음주, 흡연 같은 생활 습관은 모두 뇌에 흔적으로 남기 때문이다.
핵심 메시지
정세희 교수가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내가 살아온 방식은 그대로 나의 뇌에 남는다는 것이다.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져야 한다는 말이 있듯, 뇌에도 똑같이 책임을 져야 하는 순간이 온다. 좋은 뇌든 나쁜 뇌든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으며, 오늘 내디딘 한 걸음과 오늘 외면한 한 걸음이 모두 기록된다.
뇌 건강이 중요한 이유는 단지 뇌졸중이나 치매를 피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성격, 가치관, 기분, 삶의 태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 정확한 의사 결정까지 모두 뇌가 관장한다. 뇌는 단순히 하나의 장기가 아니라 우리 자신 그 자체이며, 뇌가 무너지면 쉽게 화를 내고 고집이 세지고 사람들과 어울리기 힘들어지는 등 오랫동안 지켜온 성격과 관계 맺는 방식까지 흔들리게 된다.
주요 내용
뇌 MRI가 보여주는 삶의 흔적

정세희 교수는 비슷한 나이대의 두 환자 MRI를 예로 든다. 한 사람은 30년 넘게 흡연과 음주를 이어온 50대로, 뇌 곳곳에 혈관이 막힌 무증상 뇌졸중의 흔적이 있었다. 최근 5년 동안 매일 술과 담배를 즐기고 앉아서 일하는 생활을 이어갔고, 당뇨와 고혈압, 지방간에 이어 신장 합병증으로 투석까지 받아야 했다. 실제 나이는 50대였지만 MRI 상 뇌는 70대처럼 보였다.
또 다른 50대 환자 역시 당뇨 관리가 잘되지 않았고 오랜 세월 담배와 음주를 이어왔다. 뇌가 채워야 할 두개골 안 공간이 텅 비어 있을 만큼 쪼그라들어 있었고, 이는 80대의 뇌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이 사진을 찍은 뒤로 그는 여러 차례 뇌경색을 겪었다. 정 교수는 MRI만으로 한 사람의 인생사를 다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몸을 어떻게 돌보며 살아왔는지는 짐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운동이 힘든 건 인간의 본능이다

운동을 하지 못했다고 스스로를 탓하는 사람들에게 정 교수는 그 자책을 멈추라고 말한다. 인류는 수백만 년의 역사 중 대부분을 수렵 채집인으로 살며 하루 10~15킬로미터를 걷거나 뛰었지만, 이는 먹고 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그마저도 식량을 구하러 다닐 때를 빼면 하루 10시간가량은 앉아서 지냈다고 한다.
결국 인간의 유전자와 뇌는 최대한 에너지를 아끼고 편하게 쉬는 쪽으로 진화해왔다. 살기 위해 필요하거나 어떤 대가가 주어질 때에만 몸을 움직이게 되어 있으니, 운동이 싫은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본능이라는 것이다. 정 교수는 자신이 낸 달리기 과제에서 학생 대부분이 최소 기준인 3킬로미터만 정확히 채워온 일화를 들며, 불필요한 움직임을 피하려는 것이 게으름이 아니라 보편적인 본능임을 새삼 깨달았다고 전한다.
현대 사회가 만든 병, 스스로 만든 습관

문제는 현대 사회가 이 본능을 너무 쉽게 만족시켜 준다는 데 있다. 버튼 하나면 음식이 집 앞까지 오고, 빨래와 청소는 기계가 대신하며, 계단 대신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가, 걷고 뛰는 일은 자동차가 대신한다. 몸을 거의 쓰지 않고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된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비만,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심근경색, 뇌졸중, 치매처럼 서로 닮은 병들에 걸린다. 정세희 교수는 비만이 단순히 외모나 체중의 문제가 아니라 몸속에 만성 염증을 일으켜 결국 뇌까지 늙게 만든다고 설명한다. 움직이지 않고도 편하게 살 수 있는 사회이기 때문에, 오히려 의식적으로 몸을 움직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도인지장애 환자 두 분이 보여준 운동의 차이

정 교수가 진행한 경도인지장애 환자 대상 연구에는 70대 두 사람이 참여했다. 한 사람은 평생 운동과 담을 쌓고 지냈던 이로, 숨이 차고 다리가 후들거리는 운동을 고통스러워하다 몇 달 만에 힘들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운동을 그만두었다. 당뇨와 고혈압, 근감소증, 콩팥병까지 있어 누구보다 운동이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끝내 포기하고 말았다.
반면 다른 한 사람은 평소 부인과 함께 산에 다니고 가끔 가볍게 뛰기도 하던 이로, 연구 기간 내내 즐겁게 참여하며 주어진 운동을 모두 해냈다. 그 결과 신체 기능과 인지 기능 모두 눈에 띄게 좋아졌다. 두 사람 모두 운동이 절실했지만 결과가 갈린 것은 원래부터 운동을 해왔는지 아닌지의 차이였다고 정 교수는 말한다.
어릴 때부터 시작하는 운동, 다음 세대에 남기는 선물
정세희 교수는 자신이 20대에 달리기를 시작한 계기로 마라톤을 즐기던 외삼촌을 꼽는다. 부모나 주변 어른이 운동하는 모습을 보면 아이는 굳이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운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이의 뇌는 성인의 뇌보다 가소성이 훨씬 높아서, 어릴 때 좋은 보상 회로가 만들어지면 그 습관이 오래도록 이어진다.
뇌에 새로운 길을 내거나 바꾸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나이가 들수록 이 과정은 더 힘들어진다. 정 교수가 소개한 한 의대생의 소감문에는 달리기를 마친 뒤 거친 숨소리를 들으며 오히려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책상 앞에서는 머리만 비대해지는 기분이었지만 트랙 위에서 비로소 몸과 연결된 것 같았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정 교수는 그 학생이 단순히 3킬로미터를 달린 것이 아니라, 자신의 뇌에 건강한 길 하나를 새로 낸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언젠가 모두 나이가 들고, 자신의 얼굴뿐 아니라 뇌에도 책임을 져야 하는 날을 맞는다. 좋은 뇌든 나쁜 뇌든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으며, 뇌는 결국 우리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왔는가를 그대로 증명한다는 것이 정세희 교수가 전하는 마지막 당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