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8. 13.

미래는 왜 절대 예측할 수 없을까 - 박 권 교수의 양자역학 강연

세바시 강연|2026. 08. 13.

고등과학원 물리학부 박 권 교수는 아주 단순한 질문 하나로 이야기를 엽니다. 과학이, 특히 컴퓨터와 인공지능이 무한히 발전하면 우리는 언젠가 미래를 한 치의 오차 없이 예측할 수 있을까요? 인공지능의 놀라운 발전을 매일 목격하고 있는 우리는 왠지 가능할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물리학이 내놓는 답은 단호합니다. 불가능합니다. 그것도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우주가 작동하는 방식 자체가 그렇기 때문입니다.

핵심 메시지

박 권 교수가 전하는 메시지는 미래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흔히 우리는 미래가 이미 어딘가에 확정되어 있고 다만 우리가 그것을 모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초기 조건만 완벽히 알면 결과를 계산할 수 있다는 믿음이죠. 그러나 양자역학에 따르면 미래는 하나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들의 중첩으로 존재합니다.

그러다가 우리가 미래를 알기 위해 관찰하는 순간, 미래는 그 모든 가능성 중에서 하나로 무작위로 선택됩니다. 이것을 파동 함수의 붕괴라고 부릅니다. 파동 함수는 어떤 일이 일어날 확률을 나타내고, 붕괴는 그 확률에 따라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나는 것을 뜻합니다. 무작위로 일어나는 이 붕괴는 아무리 계산 능력이 좋아져도 미리 알아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강연은 과학의 한계를 고백하는 이야기처럼 시작하지만, 실은 정반대의 결론에 도착합니다.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우리가 오늘을 의미 있게 살 수 있는 근거라는 것입니다.

주요 내용

명리학과 점성술이 놓치고 있는 것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인류의 오랜 꿈이었습니다. 동양에는 명리학이 있고 서양에는 점성술이 있습니다. 명리학은 사람의 운명이 태어난 시각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하고, 점성술은 태어난 시각에 벌어진 천문 현상이 운명을 결정한다고 주장합니다. 둘 다 한 사람이 처음 존재하기 시작한 초기 조건을 바탕으로 미래를 읽으려 한다는 점에서 닮았습니다.

박 권 교수는 이것들이 미신일 뿐이라고 잘라 말합니다. 사람의 운명은 태어난 시각 하나가 아니라 수없이 많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만들어지는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그 논리를 끝까지 밀고 가면 내 생년월일뿐 아니라 부모님이, 나아가 모든 조상이 태어난 시각까지 알아야 합니다. 그것도 모자라 내가 태어났을 때 나를 둘러싼 모든 사람과 물체의 상태, 결국 전 우주의 모든 물체의 상태를 완벽히 파악해야만 내 운명을 계산할 수 있습니다.

태양이 세 개라면 - 삼체 문제와 카오스

사실 우주 전체까지 갈 것도 없습니다. 물체가 세 개만 모여도 우리는 그 움직임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삼체 문제입니다. 우리 태양계에는 태양이 단 하나뿐이라 태양은 매일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집니다. 여기엔 한 치의 오차도 없습니다. 그런데 태양이 세 개라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컴퓨터로 계산해 보면 세 개의 태양은 상상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움직입니다. 어떤 때는 하나의 원 궤도를 앞뒤로 줄지어 돌고, 어떤 때는 무한대 기호 모양의 궤도를 따라 움직이며, 또 어떤 때는 예상하기 어려울 만큼 이상한 모양을 그립니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경우는 오히려 예외이고, 대부분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궤도를 따릅니다. 게다가 태양의 위치가 밀리미터나 나노미터 정도만 달라져도 완전히 다른 궤도가 나타납니다.

인류는 이 문제를 통해 카오스, 즉 혼돈 현상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카오스란 초기 조건의 아주 작은 차이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불러오는 현상입니다. 나비 효과라는 별명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이는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즈가 1972년 강연 제목으로 던진 질문에서 나왔습니다.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은 텍사스에 돌풍을 일으키는가. 다만 카오스는 뉴턴의 운동 방정식이 인과적으로 완벽히 결정되어 있더라도 초기 조건을 무한히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여기까지는 여전히 미래가 정해져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두 개의 문 앞에 선 전자

그래서 박 권 교수는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미래는 애초에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이죠. 이 어려운 이야기를 그는 우화로 풀어냅니다. 아주 오래전 먼 은하에서, 미시 세계는 양자역학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뜬 전자 앞에 왼쪽과 오른쪽에 문이 하나씩 나타납니다. 어느 쪽으로 들어갈지 고민하던 전자는 문득 깨닫습니다. 드브로이의 파동 입자 이중성에 따르면 자신은 입자인 동시에 파동이니, 굳이 하나를 고를 필요 없이 두 개의 파동으로 쪼개져 양쪽 문으로 동시에 흘러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요.

두 파동은 문을 통과한 뒤 다시 합쳐집니다. 봉우리끼리 혹은 골짜기끼리 만나면 파동은 더 강해지고, 한 파동의 봉우리와 다른 파동의 골짜기가 만나면 정확히 상쇄됩니다. 그리고 합쳐진 파동의 세기가 전자가 그곳에 존재할 확률을 결정합니다. 이윽고 전자 앞에 빠져나갈 틈 없는 벽이 나타나고, 부딪친 벽에는 파동의 세기에 따라 수없이 많은 줄무늬가 생깁니다. 이 우화 속 먼 우주는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실제 우주입니다.

만약 미시 세계가 고전역학의 지배를 받는다면 전자는 왼쪽이나 오른쪽 중 하나로만 들어갔을 테니 벽에는 줄무늬가 두 개만 남았어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 실험에서는 무수히 많은 줄무늬가 나타납니다. 이것을 간섭이라고 부르며, 실험의 이름은 영의 이중슬릿 실험입니다. 간섭이 알려주는 핵심은 벽에 부딪히기 전까지 전자의 미래가 두 경우의 중첩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관찰이 결과를 바꾼다

여기서 더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전자가 정말 두 문을 동시에 통과하는지 확인하려고 문 옆에 전자 검출기를 달아 움직임을 지켜보면 어떻게 될까요. 검출기는 전자가 왼쪽 또는 오른쪽으로 통과하는 경우를 각각 반반의 확률로 잡아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무수히 많던 줄무늬가 사라지고 고전역학이 지배하는 것처럼 단 두 개의 줄무늬만 남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지켜보지 않으면 전자는 양자역학적으로 행동하고, 우리가 지켜보면 고전역학적으로 행동합니다. 우리의 관찰이 전자의 행동 방식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오면 답은 분명해집니다. 미래는 모든 가능성의 중첩으로 존재하다가 관찰의 순간 무작위로 하나가 결정되며, 컴퓨터와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해도 그 무작위성을 미리 계산할 수는 없습니다.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축복인 이유

그렇다면 이것은 과학의 한계일까요. 어떤 면에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박 권 교수는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축복이라고 말합니다. 초기 조건과 인과 법칙만으로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 삶이 태어나는 순간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동안 언제나 더 나은 내일을 위한 희망이 남아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 삶이 완벽하게 결정되어 있지 않기에 우리는 오늘을 더 의미 있게 살 수 있습니다. 전문적으로는 이것을 창발이라고 부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고 말했습니다. 전체를 그것을 이루는 부분들만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유는, 부분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것이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상호작용은 근본적으로 양자역학에 기인합니다. 우리가 원자와 분자의 단순한 조합이 아니라 우리라는 창발적 존재가 될 수 있는 이유도 결국 예측 불가능한 양자역학 덕분입니다.

따뜻한 관찰이 시간을 멈춘다

강연의 마지막에는 놀라운 반전이 숨어 있습니다. 예측 불가능한 양자역학을 이용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예측할 필요 없이 시간을 아예 멈출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원리는 앞서 나온 성질 그대로입니다. 어떤 대상을 끊임없이 관찰하면 그 대상의 파동 함수는 다른 상태로 변하지 못하고 계속 똑같은 원래 상태로 붕괴합니다. 시간이 지나도 상태가 변하지 않으니, 그 대상에게는 시간이 멈춘 셈입니다.

물리학자들은 이 현상을 계속 쳐다보는 주전자는 결코 끓지 않는다는 농담으로 설명합니다. 전문적인 이름은 양자 제논 효과입니다. 이 효과를 이용하면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흐르지 않는 시간을 함께 보낼 수도 있습니다. 0.1초도 눈을 떼지 말고 끊임없이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그 사람은 당신이 사랑하는 그 모습에서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실제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 몸을 이루는 원자와 분자는 미시 세계에 살지만 우리 전체는 거시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박 권 교수는 여기에 훌륭한 인문학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말합니다. 서로를 외면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며 따뜻하게 관찰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의 시간을 잠시나마 멈출 수 있습니다. 예측 불가능한 양자역학의 지배를 받는 우주 속에서 우리가 서로를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서로를 따뜻하게 관찰하는 것이라는 말로 강연은 끝을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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