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7. 03.

김경일 교수의 울분 심리학, 잰걸음으로 되찾는 일상의 행복

세바시 강연|2026. 07. 03.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김경일 교수는 오랫동안 대중에게 심리학을 쉽고 유쾌하게 풀어 전해온 인지심리학자다. 행복을 주제로 한 강연이 이토록 넘쳐나는데도 여전히 스스로 불행하다고 호소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를 두고, 그는 한국 사회 특유의 정서 구조와 뇌가 행복을 처리하는 방식에서 답을 찾는다.

핵심 메시지

한국 사회는 늘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는 고각성 문화 속에서 스스로 행복을 경계하는 경향이 있다. 주인공은 행복해지는 순간 이야기가 끝나버린다는 의식, 그리고 달리는 말에도 채찍질을 더하는 습성이 방심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쌓이는 감정이 바로 울분이다. 같은 트라우마를 겪어도 어떤 이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어떤 이는 그 일이 다시 벌어질까 봐 분노를 일반화한다. 이 차이를 가르는 것은 강함과 약함이 아니라 정의가 무너졌다는 인식이며, 이 감정이 바로 PTED, 울분이다.

그가 제안하는 해법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자잘한 실천, 이른바 잔기술이다. 기대하는 행복을 하루 곳곳에 미리 배치하고, 진짜 원하는 것과 가짜 욕구를 구분하며, 무너졌을 때는 크게 도약하려 하지 말고 보폭이 짧은 잰걸음으로 회복하라는 것이 그가 전하는 메시지의 뼈대다.

주요 내용

울분, 대한민국을 뒤덮은 감정의 정체

PTSD가 끔찍한 일을 다시 겪을까 봐 두려워하는 감정이라면, PTED는 그 자리에 분노가 들어선 상태다. 나라를 잃은 설움과 울분을 구분해 배웠던 어린 시절 일화를 빌려, 그는 울분이 단순히 서럽다는 감정이 아니라 정의가 훼손된 데 대한 정당한 분노임을 짚는다.

같은 잘못을 저질러도 착하고 조용한 직원이 더 많이 징계받는 상황, 자녀가 일주일 동안 쏟은 노력을 성적 한 줄로 조롱당하는 순간처럼, 애써 쓴 시간과 노력이 무시당하는 경험이 울분을 가장 크게 키운다. IMF 시절 노력이 무의미해지던 사람들이 유독 게임에서 위안을 얻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한다.

기대하는 행복이 경험하는 행복보다 크다

소풍날보다 소풍 가기 전날이, 입학한 뒤보다 합격 통지를 받은 순간이 더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실제로 경험하는 행복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이 기대되는 행복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하루 중 특정 시각에 무엇을 먹을지까지 구체적으로 정해두며 스스로 작은 기대감을 일부러 심어놓는다. 매주 이른 새벽 농구 모임을 앞두고 잠을 설칠 만큼 설레는 이들이 많다는 사례는, 크지 않아도 좋으니 하루 곳곳에 작은 즐거움을 미리 배치해두는 습관이 실제로 얼마나 강력한 동기가 되는지 보여준다.

가짜 욕구를 걸러내는 법, Like와 Want

놀이공원에서 풍선을 사달라고 떼쓰던 아이가 몇 분 만에 손을 놓아버린 일화는 좋아함 없는 원함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그 아이가 풍선을 놓은 곳은 다른 아이들이 풍선을 들고 있지 않은 자리였다. 남들과 비교하며 생겨난 욕구는 대개 기억에 오래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짜 좋아하는 것인지 가려내려면, 그것 없이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보라고 그는 권한다. 그럼에도 계속 마음에 남는다면 진짜 욕구이고, 금세 잊힌다면 가짜 욕구였다는 뜻이다. 자원봉사에 나서는 이들이 상대적으로 과소비가 적은 이유도, 가짜 욕구를 스스로 걸러낼 기회가 많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무너졌을 때 다시 일어서는 힘, 잰걸음과 잔기술

큰 트라우마를 겪고 아무 일도 하지 못하던 한 사람이 회복을 위해 처음 한 일은 집 앞 편의점에서 가장 작은 용량의 우유를 사 오는 것이었다. 그는 이를 잰걸음이라 부른다. 속도가 아니라 보폭이 짧다는 뜻으로, 근본적인 결심 대신 시시하고 자질구레한 실천을 조금씩 늘려가는 방식이 오히려 더 멀리, 더 확실하게 데려간다는 것이다.

작은 행복은 기록해두지 않으면 쉽게 잊힌다는 조언도 이어진다. 큰 행복은 두고두고 말하고 다니니 저절로 기억되지만, 사소하게 기분을 바꿔준 순간들은 적어두지 않으면 흔적 없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아무 목적 없이 주변을 관찰하고 가까운 사람과 장난을 주고받는 것이야말로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인간다운 행동이라며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결국 그가 말하는 행복은 로또 당첨이나 커다란 성취가 아니다. 잠깐 속도를 줄여야 비로소 보이는 작고 사소한 일상의 기쁨들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꾸준히 쌓아가는 잔기술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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