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7. 09.

가정폭력 속에서 자란 아이, 아이들의 온기가 되기까지

세바시 강연|2026. 07. 09.

빨래를 널던 겨울날, 가장 행복했던 순간

누군가에게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물으면 특별한 여행이나 성취의 기억을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한 초등학교 교사는 조금 다른 답을 내놓았다. 어느 겨울날, 가족들과 함께 빨래를 탈탈 털어 건조대에 널던 평범한 순간이었다고. 같이 빨래를 넣을 가족이 있고, 보일러를 켤 돈이 있고, 그 온기 속에서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곧 안전한 관계가 있다는 뜻이었기에, 누군가에게는 너무 당연한 그 평범함이 그에게는 오랫동안 신기루처럼 멀게만 느껴졌던 것이다.

가정 폭력이 일상이었던 유년 시절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보육원에서 자랐다. 보육원에 오기 전 원가정은 가정 폭력이 일상이었다. 폭력을 견디다 못한 어머니는 그를 데리고 집을 나왔지만, 그 뒤의 삶도 쉽지 않았다. 어머니가 만난 어른들은 그를 짐짝처럼 여겼고, 그렇게 여러 어른을 겪으며 그에게 어른이란 늘 무섭고 힘들게 하는 존재로 각인되었다.

그의 편이 되어준 첫 번째 어른

2012년 8월 10일, 그가 처음 보육원에 입소한 날이었다. 계기는 학교 사회복지사 선생님이었다. 늘 무심히 지나치던 그에게 먼저 따뜻하게 말을 걸어준 이였다. 다정한 어른이 처음이라 그는 용기를 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방임 속에 살고 있다는 것, 반겨주는 사람 없이 굶고 있다는 것, 어른들의 폭력에 시달린다는 것을. 한참을 말없이 듣던 선생님은 조용히 말했다. "어른이 아이에게 그러면 안 된다." 그의 편을 들어준 첫 어른이었다. 더는 맞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안정감. 그것만으로 그의 삶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17년이 지나도 잊지 못한 한마디

인생의 방향을 바꿔준 또 한 사람은 초등학교 2학년 담임 선생님이었다. 당시 그는 옷이 늘 꾀죄죄했고 씻지 못해 냄새가 나는 날도 많았으며, 공부도 뒤처지고 친구들과도 자주 부딪혔다. 관심받고 싶은 마음은 컸지만 표현할 줄 몰라 남들에게 피해만 줬다. 그런 그에게 선생님이 물었다. "연성아, 오늘 남아서 같이 공부하고 갈래?" 17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하는 말이다. 선생님은 퇴근 시간까지 남아 수학을 가르쳐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저녁까지 챙겨주었다. 그 기억은 그의 마음속에 '나도 언젠가 저런 어른이 되고 싶다'는 꿈을 심어주었고, 그 꿈은 초등교사라는 구체적인 목표로 자라났다.

동네와 처지를 조롱하던 별명, 그리고 두 번의 좌절

하지만 세상 모든 이가 다정하지는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이 그를 '동노'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자신이 살던 동네 이름과 '엄마가 없다'는 뜻의 '노 엄마'를 합친 조롱이었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은 지금까지도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초등교사가 되겠다는 꿈이었다. 시험 기간에는 스스로 휴대폰을 반납할 만큼 간절히 공부했지만, 고3 때 응시한 교육대학교 면접에서 사회경제적 배경을 언급하면 안 된다는 규정을 모른 채 자신의 성장 환경을 솔직히 말해 결국 불합격했다. 지방 사범대에 진학했다가 다시 도전해 대구의 교육대학교에 입학하기까지, 2년을 돌아왔지만 그 시간은 초등교사라는 꿈이 그저 희망이 아니라 삶의 분명한 방향임을 확인시켜준 시간이었다.

7천만 원이 가르쳐준 것

교대에 입학하며 그는 한 가지를 다짐했다. 교육을 절대 돈벌이 수단으로 삼지 않겠다는 것.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지만 과외 대신 교육 봉사와 멘토링을 이어갔다. 국가장학금 수혜 횟수 제한으로 학비 마련이 쉽지 않았지만, 여러 장학금과 후원 덕분에 다짐을 지키며 무사히 교대를 졸업할 수 있었다. 훗날 대학 생활 동안 받은 생활비 장학금과 후원금을 정리해보니 그 금액은 무려 7천만 원이 넘었다.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으니 이렇게 많은 사람이 나를 믿어주고 도와주었구나. 어릴 때 세상은 그를 차갑게 대했지만, 스스로를 놓지 않는 순간 세상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왜 저러지가 아니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지금 그는 한 초등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일하고 있다. 첫 임용시험에서는 1.8점 차이로 떨어지는 아픔도 겪었지만 다시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학교 현장에서 동료 교사들이 '쟤는 왜 저렇게 행동하지', '왜 준비물을 못 챙겨오지'라고 의아해할 때, 그는 다르게 묻는다. 돈이 없어서 준비물을 못 챙긴 것은 아닐까, 학습의 기초가 부족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던 것은 아닐까, 관심받고 싶어 거칠게 행동한 것은 아닐까. 아이들을 볼 때마다 그는 자주 어린 시절의 자신을 만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생각한다. 누군가 손을 내밀어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자신은 없었을 것이라고.

사랑은 배워서라도 줄 수 있는 것

보육원에서 자라고 사랑받지 못했던 경험은 한때 그에게 가장 큰 단점이라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은 아이들을 편견 없이 이해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이 되었다. 그렇다고 그 시간이 좋았다는 뜻은 아니다. 아픈 일은 여전히 아프고, 상처는 없던 일이 되지 않는다. 다만 그 상처가 누군가에게 사랑을 줄 이유는 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사랑받아야 사랑을 줄 수 있다'는 말을, 그는 자신의 삶에서 이렇게 바꾸어 말하고 싶다고 했다. 사랑은 받은 만큼만 주는 것이 아니라, 주고 싶다는 마음만 있다면 결국 배워서라도 줄 수 있는 것이라고. 그는 아직 상처를 다 극복하지 못했다. 여전히 아프고 쓰라리다. 하지만 오늘도 그 상처를 발판 삼아 교단에 선다. 자신의 어린 시절과 닮은 아이를 만나면, 누군가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먼저 손을 내밀어주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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